마지막화에서야 확연히 드러났던 작가의 의도. 결국 드라마 <미생>이 원했던, 바랐던 지향점은 "왔다 장그래" 식의 전형적인 한국 드라마였던 거 같다. 


만화 <미생>에서는 사실 주인공이 없었다. 다만 회사, 회사원, 그리고 각각의 인생 얘기가 장그래라는 화자(話者)를 통해서 그려졌을 뿐.


드라마 <미생>은 달랐다. 확실하고 명확하게 주인공이 있었고, 그 주인공은 장그래였다. <미생>의 배경과 에프소드를 빌렸을 뿐, 철저히 장그래의 성공 스토리였다.


이 점은 18화에서 터졌고 20화에서 비로소 확연히 드러났다. 이것은 장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악역인 (혹은 이여야만 했던) 최전무의 신념도, 맛깔나는 조연인 김대리의 마지막 선택도 굳이 심도 있게 그려질 필요가 없었던 거고, 그 대신 대리들의 성희롱 발언과 성대리의 막장 에피소드가 필요했던 거고, 장그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20화는 오로지 장그래에게 모든 포커스가 맞춰졌던 거고,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어처구니 없기까지 한 마지막 요르단 추격신이 나온 것이다. 


20화를 보고 나서야 이 모든 게 맞아 떨어지고 납득이 갔다. 그리고 드라마 작가에게의 배신감도 많이 사라졌다. 그냥, 이게 한국 드라마의 한계이자 틀인 게고, 작가는 그 드라마의 공식에 충실히 따랐을 뿐이었다. 그냥 <미생>이라는 이름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내가 바보였던 거다.


드라마 <미생>은 잘 만든 한국 드라마 맞다. 그러나 드라마 <미생>은 만화 <미생>과는 다르다. 그리고 나는 한국 드라마가 싫다. 드라마 <미생>도 다르지 않았다.


드라마 <미생>은 <미생>이 아니었다.
드라마 <미생>은, "미생"이었다.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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